Blue christmas
새벽바람/050612
그녀의 글을 좋아한다.
이건 진짜 명작! 무덤목록! 완전 잘썼다! 누구누구야! 하며 불타오를 뚜렷한 작품은 없다.
그럼에도 그녀의 책들은 그녀의 글만큼이나 조용하고 얌전하게 내 책장 한켠을 가득 차지하고 있다.
새벽바람님은 보통 '잔잔하다'는 평을 많이 듣는 작가다. 확실히 그 말은 맞는 말이다. 온갖 더럽고 추악한 사건, 사탄 후장도 뚫을 기세의 개놈이 판치는 동인계에서. 그녀의 글과 아이들은 독보적인 천연기념물이다. 사실 천연기념물이라는 표현보단 청정지역의 무언가라고 하는 표현이 더 맞을 듯. 새벽바람이 부는 세계 안에선 치를 떨만한 나쁜 놈도 없다. 심장이 오그라붙는 엄청난 일도 없다. 골치아프게 머리를 쓰거나 심하게 감정이입을 해 지치는 일도 없다. 그저 편하게 앉아서 유유히 바람 흘러가는대로 책을 읽고 덮으면 된다. 텁텁한 뒷맛도 남지 않는다. 참 착한 글들이다.
그런 그녀의 글들 중에서 유일하게 나쁜 아이로 기억하고 있는 것이 바로 이
[Blue christmas]다. 지극히 개인적인 이유에서지만은. '담담하다'고 일컬어지는 문체에도 여러가지 종류가 있다. 절제된 담담함이나, 부드러운 담담함, 건조한 담담함이나, 체념해버린 담담함 등. 이 글은 참 담담한 문체로 씌여져 있다. 여기서의 담담함은 잡을길 없이 흘러가는 사랑을 잡기 바빠 다른 모든 감정도 잊고말아버린 담담함이다. 화자격인 주인수조차 느끼지 못하는 그 자신의 아픔과 답답함을, 독자들이 대신 느낀다. 그럴 겨를도 없이 멍하니 허상과도 같은 이를 쫓는 그에겐, 자신의 감정조차 되새길 여유가 없다. 그래서 모든게 담담하게 풀어진다.
글쓰는 일을 하는 교수와 그를 도와주게 된 학생. 굉장히 진부한 설정의 만남이다. 진행부터 결말까지도 모두 판에 박힌 모습이라 할 수도 있다. 공이 과거에 상처를 가진 자살중독자라거나, 그런 공 때문에 또다른 상처를 받는 수도 참 흔한 모습일 수 있다. 그러나 그녀의 모든 글들이 그러하듯 커다란 차이점이나 뚜렷한 개성없이도 이 책은 특별해진다. 그냥 그 자체로도. 읽는 이를 블루로 물들이는, 기척없는 분위기.
그의 흔적은 너무나 많이 남아있다.
담배를 최초로 피우게 된 계기가 그였고.
내 기호를 바꾸어 버린 것도 그였고.
또한 내 마음을 공허하게 만든 것도 그다.
모든 것을 가지고 떠났지.
아니 떠난 것은 나였지만 끝낸 것은 그였다.
나는 그에게 모든 것을 주었다.
그 비어버린 남자를 채워주기 위해
정말 모든 것을 다 주어버린 것이다.
남은 것은 텅 빈 가슴.
씁쓸한 비소.
무기질적인 삶.
내가 이 책을 사랑하게 된 계기가 된 문구. 이 책이 내게 더 특별할 수밖에 없는 건 자연스러운 이치일지도 모르겠다. 이 책을 보고 운 사람도 많다지만 난 이런 류의 글에는 울지 않는다. 미미한 안타까움을 느끼며 애틋한 여운을 즐기는 일이면 몰라도. 그렇지만 이 책은 가슴으로 울었다. 물론 실제로 눈물은 한방울도 흘리지 않았다. 저 구절을 처음 읽었을때 혹시 내가 아는 이를 알고 있던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심장이 크게 뛰었었다. 당연히 아니었지만. 언젠가의 일기와 닮아 있었다. 끊임없이 자신을 상처내, 주변인을 상처주는 사람. 텅 비어있던 사람. 그래서 떠난 사람. 그렇게 남겨진 이를 생전의 자신처럼 만들어버린 사람. 책을 덮은 뒤에도 저 구절은 끊임없이 따라왔다. 움직이는 신경에도, 잠든 의식에도,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계속적으로. 결국엔 눈물을 보이고 말았던 것 같다.
읽는 당시가 아닌, 읽고나서 한참 후에도 울게 만드는 글은 쉽지 않다. 기억과 맞물려 나온 효과겠지만 분명히 멋진 글이었다. 위태로운 초기작 특유의 매력을 담뿍 안은 글. 스스로를 변화시키기 위해 크게 노력했던 한때, 추억을 상기시킬만한 모든 것들을 버릴때 팔아버렸다. 올해 겨울쯤 재판이 나온다는 소식이 있는데 아마 나는 이번에 다시 구입을 할 듯 싶다. 지금의 그때와는 다르니까. 여전히 지워지지 않고 힘든 추억이라도 그냥 인정하기로 했다. 현재를 계속 움직일 수 있다면 그 가슴속에 무엇이 있는지는 중요하지 않으니까. 다시 읽게 되면 정말로, 그냥 글로서의 제대로 된 감상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때에도 여전히 이 글이 내게 특별하다면 망설임없이 소장하리라. 09년의 나에겐, 이제 저 아래의 글귀가 더 가슴에 와닿는다.
죽어버린, 죽음을 선택한 친구를 때때로 떠올린다.
죽은 사람을 붙잡는 건 예의에 어긋난다.
나는 이제껏 그들에게 어리광부리며 살아왔다.
미안하지만 내게 중요한 것은 살아있는 현재의 사람이야.
그러니까.
내가 언젠가 완전히 잊어도 이해해줘요.